Honey Comb - A. ver.

의지수
갑각 나비



무더운 여름이 지났군요. 석 달 만에 텍스트를 입력해봅니다. 저는 드디어 제 페이스를 되찾은 것 같아요. 보통 한 달에서 세 달 잠수, 길면 일 년에서 삼 년까지 잠수를 타는 게 잠수 스킬의 기본이니까요. 더 높은 경지로 올라가려면 십 년 잠수 정도는 달성해봐야 할 텐데 말이죠.


이번 포스팅은 소설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합니다. 이것도 추천을 받았었는데 제목은 '갑각 나비'입니다.


평상시에 책이나 활자를 거의 접하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 글에 심취하며 문학을 고찰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놀랍게도 조금은 남아있는 모양입니다. 텍스트에 몰입하고 싶을 때가 가끔은 생기거든요.


갑각 나비는 이름을 전혀 들어본 적도 없었고 내용을 접해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제목을 보고 첫 이미지는 곤충이 바로 연상되었고 갑각이라는 단어를 보아 외골격을 지닌 거대한 괴물이 나오는 미스터리 소설이 아닐까 예상을 했었는데 그런 제 추측들은 보기 좋게 빗나가더군요.


프롤로그에 한 노인이 정체불명의 식인소녀에게 잡아먹힌다는 것을 암시하는 문장이 나와서 저는 불가사의한 괴물을 상대로 미궁 속을 헤매며 쫓고 쫓기는 추격전! 이 벌어질 줄 알았더니 정작 이 소설은 모험 활극 판타지에 가깝습니다.


주역일 것 같던 나비는 안 나오고 사고뭉치 치료사 레이즈와 그의 유쾌한 동료들이 펼치는 사건들을 주로 다루고 있어요.


그럼 간단히 등장인물을 소개해보겠습니다.



엘버 브리드: 페이크 주인공. 친구와 번역 작업을 하다 레이즈를 만나게 된다. 끝과 동시에 시작을 여는 인물.


에밀리아 루비온: 긴 금발에 키가 훤칠한 여성. 루비온 가의 장녀로 과묵한 편. 그러나 성격이 발동되면 잔소리꾼이 된다. 화재로 집을 잃고 티밀리아와 여행길에 나선다. 검사 속성.


티밀리아 루비온: 귀엽고 붙임성 있는 여성. 루비온 가의 차녀. 예쁘고 애교가 많아서 나도 제일 좋아함. 단, 무리하게 친해지려 하면 그녀가 소지한 온디러스 야카라는 단검에 찔릴 수도 있으니 주의하자.


레이즈: 1부의 중심인물. 몇백년 전부터 대륙에 존재했다는 전설의 치료사. 부활의 왼손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소문과는 달리 환자를 고칠 때마다 사건이 끊이질 않는다.


루자 펜블렌: 레이즈를 따라다니는 여검사. 무뚝뚝하지만 실력은 좋다. 밀가스트와도 친분이 있다. 단발과 집사 속성.


로반트의 식도락가: 대륙 권력자들의 정기 모임. 회장인 로저 클리드 공작, 추기경 페즌 알바린, 후작 카이츠 바슈랭, 대학교수인 피터 덴버즈로 구성되어 있다. 본래 진귀한 이야기와 만찬을 즐기던 자들이었으나 금단의 요리법에 손을 댄 이후로 미쳐버리고 말았다.


퀴에르 밀가스트: 2부의 중심인물. 밀가스트 가문의 당주. 젊은 나이에 백작이 되었다. 이름의 유래는 밀가루에서 따왔다고 한다.


비아고아: 사람의 심장 속에서 자라나는 악마. 손처럼 생긴 모습으로 숙주의 심장을 움켜쥐게 되면 주종관계가 뒤바뀐다. 밀가스트를 몹시 싫어한다.


기에르 루틴: 유명한 작가. 재밌는 글을 쓰겠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다.


로바나 엔쥴로스: 이 세계의 지배자. 시의 별이라 불리는 레드루의 연작 시집 49마리에 등장하는 괴물들. 그들 중 마지막 49번째를 차지하고 있는 괴물이자, 모든 살아있는 것의 왕. 애칭은 엔쥬.



저는 등장인물 중에 티밀리아가 마음에 들더군요. 에피소드 중에서는 태엽이 가장 괜찮았습니다. 식물도 인상적이었죠. 갑각 나비는 옴니버스 형태로 각 에피소드가 전체 줄거리와 연결되는 구조가 특징인데 읽어본 바로는 분위기가 그로테스크합니다. 이건 어둡고 질척질척한 느낌이군요. 글쓴이의 성향인 것 같습니다.


갑각 나비를 추천해준 분이나 이 소설을 작성한 분의 스타일이 흡사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딥다크한 쪽을 선호하면서도 쾌활한 타입이신가 봅니다. 저랑 방향성이 비슷하지만 약간 다르죠. 그리고 고전 문학 쪽에 소양을 지닌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 글을 보면서 제가 읽어낸 감정은 글에 대한 '열의'입니다. 내내 글을 잘 쓰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 소설을 이미 고등학교 때 썼다는 점이 또 주목할 만합니다. 단편 하나도 완성하기가 어려운데 대단하군요. 제가 고등학교 시절에는 백일장에서 글로 입상을 해보려고 죽어라 수필을 써 보다가 장려상도 못 탔던 쓰라린 추억이 아직도 떠오르네요.


나중에 알고 보니 갑각 나비가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세가 있습니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관련 글을 종종 발견하곤 했어요. 판타지 소설 좋아하시면 읽어볼 만합니다. 명대사인 솟아나는 것이 있으면 가라앉는 것이 있다, 가 기억에 남는군요.


그럼 다음 나비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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